어린이구청
21세기 세계적인 일류 도시건설 지향
우리고장 강서는 유서깊은 가야문명의 발상지이자 가락국 건국터전으로서 역사변천에 따라 금관군, 김해소경, 김해부, 금주군, 금주현, 김해도호부, 김해군 등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어 왔으며,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되어 부산시대를 연후, 1989년 1월 1일 가락, 녹산, 천가면을 추가로 편입시켜 구세를 확장하면서 자치구로 승격하였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신청사를 2000년 6월 9일에 개청하여 새천년 새부산 시대의 주역으로서 21세기 세계적인 일류 도시건설을 지향하고 있다.
동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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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1·2동 | 대저도는 원래 경상남도 양산군 대상면, 대하면 지역으로 서낙동강 어귀에 큰 모래톱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대저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상면은 대저도의 위쪽에 위치하여 출두리, 사덕리, 대지리, 평강리를 관할하였고 대저도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하면은 소덕리, 덕두리, 도도리, 맥도리, 울만리를 관할하였다. |
강동동 | 강동동은 본래 경남 김해군 덕도면으로 대사리, 상덕리, 북정리, 제도리 등 4개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에 김해군 가락면에 병합되었다가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되면서 옛 가락면에서 볼 때 서낙동강 동편에 있다고 하여 강동동이라 이름 지었다. |
명지동 | 낙동강 하구 삼각주의 최남단에 위치한 명지동은 최대의 대파 및 해태(김)생산지로서 예전에는 소금 만들기에 적합하여 '명지소금'이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섬전체가 온통 갈대밭이어서 갈대를 이용한 '노초수공품'이 특산물이었다. 토착민이 85%이며 단일 초등학교의 선후배 관계로 지역 연대의식이 강하다. 「명지도(鳴旨島)」라는 지명의 유래는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마다 섬의 어딘가에 서 먼저 변(變)을 예고하는 북소리, 종소리 같은 소리가 섬 전체에 울러 퍼졌다는 데서 '명 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가락동 | 가락동의 지명유래는 문헌상 잘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김해지리지에 의하면 가락이란 낙동수에 걸쳐 있다는 뜻으로서 큰 물가에 있는 지역임을 뜻한다. 500여년 전까지 무인도였던 가락에 죽도를 거점으로 민가가 이주하여 정착한 이후 김해에 예속되어 있다가 구한말 1895년 (고종 32년) 관제 개혁때 행정청인 김해군 가락면이 되면서 비로소 가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
녹산동 | 녹산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녹산을 처음에는 녹산(鹿山 )이었는데 녹산(菉山 )으로 고쳤다는 설이다. 즉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봉화산의 동쪽은 굶주린 사슴이 들판을 달리는 모양인 기록주야형의 명당이기 때문에 녹산이라 하였다고 하나 녹산(菉山 )이라는 지명은 녹두처럼 작은섬인 녹도(菉島 )에서 연후한것을 봄이 타당하다. 그것은 녹산이라는 지명에 앞서 녹도가 여지도서의 김해부지도상에 표시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 순조 11년의 염전 관계기사에서도 명록양도라고 하여 녹도라는 지명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지도서 단계까지는 조그만 일개 섬이었던 녹도가 계속되는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 발달로 인하여 서서히 육지로 변모되는 추세속에 놓여 있었으며 19세기 초반 이후는 비록 섬으로 기록되기는 하였으나 명지도와 더불어 염전이 상당히 성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미 육지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가덕도동 | 가덕도동의 지명유래는 조선중종 37년에 가덕도에 천성 만호진과 가덕진을 설치하여 왜구의 침입을 막았고 1906년에는 웅천군 천성면, 가덕면을 설치하였으며 그후 1908년에 두면을 합하면서 두면의 머릿글자를 따서 천가면이라 이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