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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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대저1ㆍ2동

대저도는 원래 경상남도 양산군 대상면, 대하면 지역으로 서낙동강 어귀에 큰 모래톱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대저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상면은 대저도의 위쪽에 위치하여 출두리, 사덕리, 대지리, 평강리를 관할하였고 대저도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하면은 소덕리, 덕두리, 도도리, 맥도리, 울만리를 관할하였다.

대저1동 지명유래
동 명자연마을명유 래
대저1동신덕 (新德) 김해군 대저면때는 사덕리에 소속된 부락으로 국도가생긴뒤 사덕상리에서 나뉘어 졌고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신사덕이라 하다가 신덕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상리 (上里) 낙동 제방을 쌓기 전에는 강변 기슭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제방축조후 현재의 위치로 이주하게 되었다. 사덕이란 지명은 모래가 많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상리는 사덕의 위쪽에 있는 마을로 붙여진 이름이고 옛날에는 정금이라 했다
장로 (長路) 1933년 강서지역에 큰 변천을 가져온 낙동장교가 개통되면서 다리와 이어지는 새로운 긴 도로가 개통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신장로이다 이렇게 부르기 이전에는 지금의 낙동장교에서 200m북쪽에 구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었으므로 나릿가 라고 불리기도 했다
번덕 (繁德) 현재의 낙동제방을 쌓기 전에는 지금 낙동강물이 흐르는 중심부까지 모래가 쌓여 뭍을 형성해 몇 채의 가옥과 정미소가 있었다. 어느 해 큰 홍수를 입어 이곳의 모래를 많이 쓸어 갔으나 많은 잔디가 덮여 있던 곳에는 홍수의피해가 적어 큰 덕을 보았다 하여 수덕 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다. 옛날 박씨들이 처음 정착했다하여 박씨촌이라고도 부름
당리 (堂里) 위치하는 지대가 대저도에서 제일 높은 곳이어서 당말리라고 불렀는데 당산이 먼저 세워진 유래로 말미암아 당리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신촌 (新村) 당리부락 배수로 건너편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촌은 출두리에서는 가장 늦게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동연정 (東淵亭) 옛날 이곳은 홍수때 마다 강물이 범람하여 물길이 한 곳으로 세차게 맴돌며 모래를 쓸어 버려 큰 못을 이루었는데 이 못가에 정다를 짓게 되어 이곳을 연정이라 부르게 되어 동쪽은 동연정 서쪽은 서연정이라 한다.
서연정 (西淵亭) 농지개량조합대저양수장 용수로 서쪽이 서연정마을이다. 일제시대에는 이 용수로 둑길을 따라 몇채의 집이 있었고 수도작과 밭농사 경작을 하며 살았으나 점차 모여 든 사람들로 제법 큰 마을로 성장하였다.
대지상리 (大地上里) 낙동강 평야의 넓은 땅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대지리란 이름이 붙여 졌으며 대지리에서도 높은 쪽에 위치한 대지상리는 이 지역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가장 큰 마을이다
중촌 (中村) 대리상리에서 하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마을로서 대지의7개부락 가운데 중간쪽에 위치하고 있어 중촌 이라 한다.
중리1구 (中里1區) 1885년 대홍수가 나기 이전까지는 현재의 서낙동강 강바닥자리에 중리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잦은 홍수로 부락은 강으로 변화면서 모래를 밀어붙인 자리에 다시동네를 이룬 곳이 지금의 중리마을이다
중리2구 (中里2區) 이마을은 옛날 서낙동강이 평강천으로 굽어지는 어귀가되어 모래밭과 갈대만이 우거진 갈밭이어서 갈밭마을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쓸모없는 모래땅으로 거의 불모지 였으나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옥토로 만들어 지금은 고등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대지하리(大地下里) 1865년 여름장마로 대홍수가 났을때 밀려내려온 모래가 쌓이면서 언덕받이가 생겨 여기에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는데 이마을을 ‘모래각단’ 이라 불렀고 이곳이 오늘날의 대지하리 마을이다 대지하리는 대지의 아래쪽에 위치하여 ‘아래각단’ 이라고도 불렀다.
평강상리(平江上里) 국도14호선과 농지용수로가 마주치는 곳으로부터 동남쪽에 위치하며 옛날에 뽕나무가 많아 상목리라 불렀고 평강리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있는 평강상리로 공군부대로 향하는 길과 중리2구, 그리고 부산교도소가는길이 연결되는 길목이어서 몇몇상점들이 있다.
평강대리(平江大里) 국도14호선에 평강변을 따라 비행장후문으로 가다보면 길이 옛길과 큰길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기점이 되는 곳에 대리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이마을 둑길에 포구나무가 줄지어 있어 포구나무각단일고도 불렀다
평강사리(平江沙里) 평강천의 잦은 홍수로 이곳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하여 모래톱을 이루어 갈대만 무성히 자라고 있던 땅을 개간한지 20년이 지났다 평강양수장의 용수로 들길을따라 자리잡은 평강사리 마을은 해방당시 대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로된 초가집이 옹기종기 이웃하고 있었던 평강리의 가장 큰 마을이었다.
평강하리(平江下里) 사리의 남쪽 평강천가에 있는 마을로 평강리에서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평강하리는 김해국제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소리에 하루해가 가는 마을이다.
칠점 (七點) 평강하리 동쪽에 위치한 칠점마을은 오랜 옛날 바다속에7개의 산언덕으로 바닷물이 산허리까지 수위가올라 봉우리 만이 7개의 점을 찍어 놓은 것 같이 보였기에 침점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도 대저도가 뭍으로 변하는 역사와 그때를 같이 한 것으로 본다
신정 (新正) 신정마을은 대저동에서 서낙동강 건너편 김해군 대동면 초정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행정적으로는 대저1동121-204번지 30통에 소속된 대동면 속에서 대저땅이 된 마을이다.
대저2동 지명유래
동 명자연마을명유 래
대저2동등구 (登龜) 낙동장교에서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3㎞쯤에 형성되어 있는 등구마을은 대저1동과 대저2동의 경계지점으로써 옛날 바다에서 서낙동강물을 거슬러 거북이가 가끔 기어올라 왔다고 등구막이라고 했다고 하여 옛날 등구나무 숲이 둘러 싸여 있어 등구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있다.
신소 (新蘇) 등구마을을 지나 공항 입구까지 공항로를 따라 잇대어 있는 곳에 신소마을이 있는데 조국광복과 더불어 새로운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신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덕 (小德) 공항로 남쪽과 용수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소덕하리는 약200여년전 부락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세월 김씨와 이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제는 농촌지대에서 변모하여 차츰 도시화 되어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신흥 (新興) 공항에서 남쪽으로 진해~부산간 도로를 따라 대저중학교 입구까지 용수로 동편에1960년대에 형성된 신흥마을이 있다. 해방 후 일본 · 만주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현 김해국제공항 자리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아 왔는데6.25사변이 나자 공군비행장 확장으로 그 곳을 떠나 현 위치로 정책이주하게되어 새로운 부락을 이루었다.
용두 (龍頭) 용머리 형태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용두라는 명칭이 붙었다. 일제말기 공군비행장 확장공사로 사두본리의 철거민 30여호와 8.15이후 귀환동포가 이곳에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사두 (沙頭) 200여년전 마을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는 양산군 대하면 모래언덕의 머리가 되므로 사두리가 되었다. 북쪽에는 새핀들, 농막들, 동북쪽에 시비기들, 서쪽에는 서들이 있고 서간선수로가 있었으며 서들 밖은 태구라고 했다.
상방 (上芳) 대저2동사무소에서 버스길을 따라 공항쪽으로 가다 보면 소덕하리를 지나서 상방마을이 나타난다. 상방은 상등을 고친 이름으로 1920년대 형성된 마을이며, 온들녘에 크로바꽃의 향기에 덮여 있어 상방이라는 마을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덕두 (德斗) 덕두리는 덕두본리.동방.금호의 3개 마을로 되어 그 중 가장 일찍 개간된 마을이 덕두본리부락이다. 이곳에는 조선후기 용동궁에 속하는 둔전답과 노전이 있었고 또 행창위궁의 둔전답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방 (東方) 동방마을은 1953년에 덕두본리의 동남쪽30여호가 분리하여 형성되었다. 분리당시 연안 이씨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50호의 가구 중 이씨는 몇집 되지 않고 계속 이주해 온 각 성씨로 이루져 있다.
금호 (錦湖) 제3낙동교에서 부마 고속도로의 톨케이트 북쪽에 큰 소나무와 작은 소나무가 들 가운데에 어우러져서 있고 남쪽에는 은빛나는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맥도강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금호마을이다.
본맥도 (本麥島) 맥도리는 본맥도. 작지. 염막. 송백. 장협. 동자등 6개부락이 있는데 이중 본맥도는 맥도리 북쪽 부마고속도로 남쪽에 위치하여 맥도강을 사이에 두고 금호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작지 (作之) 원래 섬으로서 마을 형성이 100년 전후로 처정되며 작지는 ‘짝지‘로 불렀는데 용수로를 따라 길게부락이 형성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현제 120가구에 230세대가 살고 있으며 주민의 3분의 1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3분의 2이상은 사상공단의 근로자와 택시 기사들이다.
염막 (廉幕) 염막은 발을 많이 생산한 발막섬과 염전이 있었던 염밭섬이 합쳐 생겼다. 작지 부락 남쪽 진부선 국도를 따라 송백까지 뻗어 있는 맥도의 끝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 염막1구이다.
동자,장협(東子,長峽) 동자도는 대홍수때 동자가 떠내려 와서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동자도의 장협은 갈밭으로 된 좁고 긴섬이라는 뜻이다.
송백 (松柏) 대홍수로 제방이 무너졌을 때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떠 내려와 이곳에 뿌리를 박고 자랐다하여 송백마을이라 이름지어졌는데 상송백, 하송백으로 나눈다. 맥도 끝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0년대에 갈밭을 개간하여 전답을 일구었으나 대홍수로 폐허가 되었다가 1934년 제방을 쌓아 안전지대로 형성된 때는 30호 가량 살았었다.
신노전 (新蘆電) 강으로 경계를 이루는 명지동, 강동동, 대저2동을 연결해 주는 신노전은 새갈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약 70여년 전 신노전에서 가락면과 제도와 명지동 순아도를 왕래하는 나룻배가 개설되어 있었다.
신평 (新平) 울만리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설만리 사두리 일부와 덕도면의 이울과 설만의 병합 그 이름을 따서 울만리가 되었는데 신평, 입소, 설만, 정관등 4개 마을이 있다.
입소 (立召) 입소마을은 공군비행장의 서쪽과 설만부락의 서편에 위치하여 강동동과 신평마을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이다. 2차대전 후 입안청마을과 소용포마을이 합쳐서 한마을이 되었으므로 두 마을을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입소 마을이라 하였다.
설만 (雪滿) 김해군 대저면 대 울만리에는 설만부락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고 으뜸가는 마을이었다. 옛 이름은 희만이라 하였는데 이는 행운이 담긴 즐거움이 깃든 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고 설만은 가장 낮은 지역이므로 눈이 올때는 적설량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순서 (順西) 부마고속도로를 축으로 월포의 북쪽이 순서마을로서효자의 전설에 따라 순정이라고 했다.순계섬과 서간도가 개울을 사이에 두고 형성돼 오는 동안 두 마을 가운데 있는 큰 개울을 중심하여 하나로 통합한 후 두 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순서라 했다. 100년 전에 몇 사람이 갈밭을 개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한일합방 이후에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도도본리(桃島本里) 본래 도도리는 9개 마을(상리, 내리, 서호, 월포, 상납청, 신방, 순서, 군라, 신노전)이었으나 현재는 6개 마을(본리, 상납청, 월포, 순서, 군라, 신노전)로 되어 있다. 웃각단인 상리와 상리 서쪽의 서호부락은 공항건설 때 없어졌고, 신방은 순서에 병합되었으며 상리에 남은 몇집과 안각단인 내리를 합쳐서 도도본리가 되었다.
상납청 (上納廳) 부마고속도로가 대저2동을 가로질러 가는데 동편은 월포마을이고 서편이 상납청이다. 100여년전 몇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갈밭을 개간하여 살았는데 한일합병 후 일본인 중부기차랑이 본격적으로 개간하여 전답을 일구어 마을이 이루어졌다.
월포 (月浦) 대저2동을 관통하는 부마고속도로 남쪽을 구분하여 길게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 월포다. 맥도강에 이어 져 지형이 마치 반달같이 생겨 경치가 좋았으며 월포와 맥도 장협을 연결하는 포구가 있어 땅이 반달같이 생긴 포구란 뜻으로 월포라는 이름이 생겨났고 옛날에는 월포~맥도~장협에는 이 왕래하고 있었다. 포구는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20년전에 없어져 버리고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군라 (軍羅) 조선조시대 낙동강 하류지역을 지키는 군막이 있었던 곳이었다. 군라는 군관청과 황라도 두 마을을 통합해서 생긴 것으로 명칭은 이두 마을 이름을 첫 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군라부락의 부분은 유풍도라 하여 당초엔 월포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행정상 불편이 많다는 주민들 요청에 의하여 10여호가 군라에 편입하게 되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 문화관광계 (051-970-4064)
만족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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