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젓의 명성 ‘신포나루터’
게젓의 명성 ‘신포나루터’
↑ 1970년대 명지~하단(옛 신포나루)간 도선 취항식
↑ 2000년대 옛 신포나루터와 낙동강 하구언둑 전경
명지동은 ‘명지처녀 쌀 서말 먹고 시집가면 다행’ 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쌀 생산지로서 는 부적합한 삼각주 토질의 지형적 특성을 지닌 곳이다.
‘게젓 사이소!’ 아낙네 외침에 하루가 시작 되었던 신포나루터.
조선시대 우리나라 소금교역의 대표적인 포구였던 명지 영강나루가 1935년대 낙동강 일천식 제방 공사로 그 기능을 잃자, 이곳 신 포시장 맞은편 제방 너머로 옮긴 후 명지~하단을 왕래하는 신포나루가 되었다.
낙동강 연안의 상업주도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수로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해 왔다.
신포나루는 수산, 창녕, 경북 상주지방과 인근 사하구 하단을 연결하는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이 나루를 통해 명지의 특산물이었던 소금 과 게젓이 경상남북도 내륙지방까지 판매되었다.
게젓은 ‘사촌과도 안나눠 먹는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귀하게 여겨, 내륙지방에서는 오히려 이 게젓 때문에 명지를 알 정도로 그 명성은 대단했다.
1987년 하구둑이 놓여지고 나루터는 그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때문에 일웅도와 을숙도 갈대숲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진 채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만이 잔잔한 바다 물결 속으로 투영되고 있다.
↑ 도선이 취항되기 이전의 신포나루 통통배의 전경
↑ 2013년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새로 생겨난 낙동강 제2 하구언 다리 전경
↑ 2013년도 신포나루터가 있던 자리는 국도 2호선 확장이 되었고, 옛 신포 시장은 법인 시장으로 변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