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주 발복시킨 ‘칠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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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주 발복시킨 ‘칠점산’

1950년대 사진

↑ 1950년대 칠점산(七點山 ; 일곱 봉우리)과 평강초등학교 모습. 1943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군사용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3개 봉우리가 없어졌고, 광복 후 공군기지 확장으로 나머지 4개의 봉우리마저 허물어 버렸다.

1970년대 사진

↑ 1970년대 이후 김해국제공항 확장공사가 연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옛 칠점산은 공항부지에 모두 편입되었고, 현재 1개의 봉우리가 반쯤 허물진 상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칠점산의 위치도

↑ 원형 점선부분은 낙동강 하구 삼각주를 발복시킨 칠점산의 위치도

일곱개의 산봉우리가 널려 있다 해서 붙여진 대저 칠점산은 오랜 세월동안 낙동강 하류 로 흘러 내린 토사를 막아 강서 삼각주를 탄생시킨 명산이다.

칠점산은 칠점의 수룡만이 살고 있던 시절에 삼차수(서낙동강 하류)물줄기를 바로잡아 기름진 강서(김해)평야를 만들어 줬고, 옛 6 가야중의 하나인 김해 가락국 5백년 왕도국가가 이를 토대로 꽃피웠다.

또한 칠점산의 참시선인과 사상구 강선대 선인은 가락국 거등왕(2대)의 초청을 받아 김 해 초선대에서 배를 띄워 놓고 가야금을 타면 서 함께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낙동강 하류 이름난 명승지였다.

광복 전후까지만 해도 칠점산에는 대저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과 기우제를 올렸던 무지개산,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이 들어서 있어 평일에는 1~2백명, 명절날에는 1천명 이상의 대저사람들이 모였던 곳이다.

지금은 일곱 봉우리 칠점산의 옛 모습을 찾을길 없고 한 줌 흙더미인 채로 남은 반점산이다.

일제강점기 서남으로 뻗어 내린 3개의 산봉우리는 일본군이 비행장 활주로 공사로 허물어 버렸고, 광복 이후는 우리나라 공군기지 확장과 민간공항 유치로 인해 수차례의 비행장 확장공사가 진행되면서 나머지 4개의 봉우리마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지금은 공항과 공군부대가 칠점산을 가로막아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 문화관광계 (051-970-4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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