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풍성한 ‘오봉산’
먹거리 풍성한 ‘오봉산’
↑ 1970년대 오봉산 자락 가락초등학교와 들녘
↑ 1960년대 오봉산 정상. 문수암 절 옆에 설치된 사이렌
↑ 2000년대 오봉산 자락 가락초등학교와 들녘
↑ 현재의 오봉산과 서낙동강, 김해(강서)평야 원경. 우측으로 신항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예종실록지리지(1496)」에 전답과 민가도 없는 무인도로 기록돼 있는 오봉산.
서기 47년 가락국을 건국한 김수로왕과 허 왕후가 이곳 산기슭 3층 바위에서 낚시를 즐겼다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축산성을 쌓고부터 서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침략전쟁의 요새화가 되었고, 인조 24년(1646)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함과 군기를 만들던 대변 청 설치와 세곡을 수납하는 해창이 들어서면 서 낙동강 수로 무역이 번성하였다.
또 1692년에는 금파대를 건립하여 민간인 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농토를 개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크고 작은 향토사의 애환이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조선말엽에는 가락동 해창과 김해시 불암 조창을 연결하는 산태방둑을 축조하고부터 이 지역 저습지 갈대밭이 농토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 해창나루터 중심으로 정미업이 번성 하였고, 수로와 육로교통의 요지로서 낙동강 하류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지금은 옛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오봉산에는 왜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6·25북한의 남침 전쟁 때 목숨을 바친 39 명의 영위를 안치한 전몰국군장병묘소와 충혼비가 건립돼 나라에 바친 충정을 길이 보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