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꽃 정취의 ‘둔치도’
갈대꽃 정취의 ‘둔치도’
↑ 1920년대 둔치도 개간을 위해 금병산 자락 협소한 길을 넓히는데 사재 를 투입한 이만영 신작로개설 영세불망비
↑ 1970년대 둔치도 원경
↑ 1980년대 둔치도의 모습. 녹산동 봉화산에서 바라본 둔치도와 김해(강서)평야 원경
↑ 2000년대 둔치도 모습. 서낙동강과 조만강을 사이에 끼고 60만평 규모의 삼각주, 가락동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서낙동강 중심부에 위치한 둔치도는 강서 지역 명지도, 대저도와 함께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낙동강 하류 삼각주이다.
1908년 일본인들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 립하여 우리나라의 토지를 강제로 착취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둔치도는 무성한 갈대밭을 이루며 갈꽃 나부끼는 강변의 정취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둔치도는 남조선제지주식회사 (구포소재) 소유로 넘어가 60여만평 규모의 갈대밭에서 생산된 갈대 전량이 펄프원자재로 공급되기도 하였다.
1920년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진해시 웅천 지역 이씨들이 둔치도 상평을 개간하였고, 당시 이만영은 김해시 장유와 녹산을 연결하는 조만강 금병산 벼랑끝이 험난해 이곳을 왕래 하는 주민들이 많은 인명피해를 당하자 개인 사재를 투입하여 도로를 넓히는 사업을 펼쳤다. 그 공로로 주민들은 ‘신작로개설영세불망비’ 를 세우고, 둔치도 개척사를 기리고 있다.
1988년 김해시분뇨처리장 설치 주민반대운동을 적극 펼쳤으나, 막지 못하고, 주민숙원 사업비 13억6천만원을 지원받아 둔치도 제방 공사를 완공하였다.
1997년 17만평 규모의 둔치도연료단지조성 과 장락~둔치도를 잇는 다리가 준공되었으나 주민들이 원하는 둔치도종합개발 청사진은 요원한 가운데 갈밭사이 조만강 위로 작은 고깃배들이 평화로이 정박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