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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26 호 | 기사입력 [2022-11-24] | 작성자 : 강서구보

뒤란-"지나간 시간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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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산 흥국사

늦가을 오후, 햇빛이 뉘엿한 산속 절집을 찾았다. 고즈넉한 절 입구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저 낙엽은 이 맘 때만 되면 이유 없이 바스락거리는 내 마음 같다.

대웅전 옆 키 큰 은행나무는 이미 샛노랗게 물들었다. 짙은 유채색의 잎은 이제 가을이 깊었다고 일러준다. 풍성하던 잎들도 거의 반도 남지 않았다. 조금 지나면 저 잎들도 모두 떨어질 것이다.

어떤 이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 흐르는 것은 사람이고, 시간은 그대로인지 모른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단풍이 절집 주위를 에워쌌다. 늦가을 잡목에 드는 단풍은 빛바랜 절집 단청 같아 처연하다. 찾는 이 뜸한 절 마당 한 쪽엔 누가 심었는지 국화도 끝물이다. 향기롭던 꽃봉오리도 세월에 지쳐 짓물렀다.

이곳은 김수로왕과 허황옥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 대웅전 앞마당 돌벤치에 앉아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생각한다.

옛적 그 먼 인도에서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그것도 무거운 돌배를 타고서. 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랑을 어떻게 믿고.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지난 시절, 내 청춘의 화양연화였던 한 때를 생각한다. 그미는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당시 내가 다닌 캠퍼스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가을이면 언제나 떨어진 노란 은행잎들로 지천이었다.

그미의 말에 몰래 떨어지는 은행잎을 붙잡으려던 기억이 새롭다. 사랑에 대한 참 순진하고 낭만적인 믿음이었다. 그미는 내가 절 좋아했다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면 끝이 갈라진 은행잎을 붙잡은 건 불완전한 사랑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그냥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면 좋았을 텐데.

절 마당 한쪽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에다 마음의 편지를 쓴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 아름답더라. 그리고 밥벌이의 고통으로 이젠 모든 게 희미해지고 있다고.

마음의 편지에 담기는 내용은 온통 회한과 미련만이 가득하다. 이런 편지는 노인이 된 뒤에나 쓰는 게 좋다. 받아 주는 이 없는 허무의 저 편에 부치는 편지이기에.

하릴없이 절집 마당에서 떨어진 낙엽만큼 마음속에 쌓여있는 추억들을 소환해 본다. 그러다가 청마가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 보다 행복하다고 했던 구절을 떠올린다.

늦가을 쓸쓸한 절집 차안의 단풍세계에서 피안의 상상세계로 펴본 부질없는 추팔이다. , 시간은 그대로 인데 안타깝게 내가 세월 따라 너무 흘러 버렸는가. 문득 절 뒤편 대나무 숲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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