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좋은 계절, KBS 방송 프로그램 ‘전국을 달린다’가 가덕도에서 촬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KBS 부산이 ‘부산의 아름다운 섬, 가덕도에 가다’라는 주제로 가덕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촬영팀이 맨 처음 찾은 곳은 섬의 서남단의 외양포였다.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옛날 인근 해역에서 숭어를 잡는 어선들이 드나들던 한적한 포구였다.
그런데 117년 전인 1904년, 일제가 이곳에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평화롭게 살던 마을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병영과 진해만사령부 포진지를 설치했던 곳이다. 해방 뒤에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 있지만 그 당시의 아픈 역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서구가 바닷가에 널찍하게 조성한 주차장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자 세월의 더께가 잔뜩 낀 일자형 목조주택 여러 채가 눈에 들어온다. 강서구 문화해설사 조유례씨는 “일제 당시의 흔적을 간직한 병사들의 막사”라고 촬영팀에게 설명해준다.
마침 주택에 거주하는 집주인의 안내로 원형대로 보존된 주택 내부구조와 당시 사용한 자재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집주인은 자신이 어릴 적 부모님의 제비뽑기로 이곳에 살게 된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마을 곳곳에는 주둔하던 일본군 병사들이 사용했던 우물터와 막사가 산재해 있다. 병사들의 막사는 이곳에 둥지를 튼 주민들의 보금자리로 ‘한 지붕 두 가족’ 또는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이다. 대부분의 형태는 그대로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의 취향에 따라 수리한 지붕은 제각각 이었다. 때문에 이곳에 몇 가구가 사는 곳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을 다 둘러보고 숲에 둘러싸인 일본군 포진지터도 방문했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말기 진해만 방어를 위해 구축한 요새 진지다. 웬만한 포격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포진지와 탄약고, 내무반 등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강서구가 당시 역사를 관광객들이 알 수 있도록 탄약고에 홀로그램 설치와 사진 등을 전시해 놓았다.
외양포 마을 촬영을 마치고 조금 떨어진 대항항 인공동굴을 찾았다. 강서구가 관광객들을 위해 지난해 말 해안 데크로드 설치와 5곳의 인공동굴 정비를 잘 해 놓았다.
문화해설사 조유례씨는 “이 인공동굴들은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말기 진해만 방어를 위해 뚫은 동굴요새”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강제징용된 우리 선조들이 별다른 보수 없이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힘들게 파놓은 곳이다.
지금은 데크로드를 만들어 접근이 쉽지만 당시엔 캄캄하고 단단한 바위 속을 오직 망치와 정으로 어떻게 팠을까. 우리 선조들의 한과 땀이 서린 곳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촬영을 하던 리포터도 “프로그램 특성상 밝게 진행하고 싶지만, 외양포 마을과 대항항 인공동굴 등의 역사를 알고 밝게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가덕도의 아픈 역사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이번 KBS의 프로그램 촬영에 동행하면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가덕도의 역사를 알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가덕도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역사가 있는 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서재수 구보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