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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01 호 | 기사입력 [2020-10-23] | 작성자 : 강서구보

강서향토사-일본군 대항(大項)에서 결사항전 준비6

  • 워싱턴 벚꽃의 비밀

    해마다 3월말~4월초에 화려하게 피어나 사람들의 춘심을 휘어잡는 벚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는 어디서 열릴까? 미국 워싱턴의 타이들베이슨(Tidal Basin)이다. 이 무렵이면 전세계 관광객 100만여 명이 워싱턴으로 몰려들고 미 관광수입의 3분의 1이 이때 들어온다. 타이들베이슨은 포토맥 강변을 따라 조성된 인공호수로 워싱턴 운하의 방수를 위해 설계되었다. 포토맥 공원에는 미 국회의사당과 토머스제퍼슨 기념관, 루즈벨트 기념관을 비롯하여 뉴모멘트 탑등 관광지가 풍부한 곳이다,

    대한해협 전투(쓰시마해전)가 끝난 한 달여 뒤인 19057월 가쓰라데프트의 밀약이 성사된 후 일본은 감사의 뜻으로 도쿄시장 오자키유키오가 3,000여 그루의 벚나무를 미국워싱턴D.C에 선물(1912, 미일우호상징)하였고 이를 포토맥 강변에 심은 것이 오늘의 미 동부 최대의 축제를 만들어 내었다.

    워싱턴 벚꽃은 원산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이건만 조선을 먹잇감으로 생각한 일본과 필리핀을 가지고 싶은 미국의 밀약으로 조성되었다. 그 화려함 뒤에 대한제국의 비극적 운명의 그림자가 숨어있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일본 사상가가 영문으로 저술한 무사도(Bushido; 1899년 니토베 이나죠 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사무라이 정신에 심취되어 친일성향을 보였다. “나는 일본이 조선을 병탄(倂呑)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극도의 편향성을 보인 인물이다.

     

    대통령의 딸 방한

    190578일 루즈벨트가 파견한 대규모 아시아 순방외교 사절단이 탑승한 만추리아호가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항했다. 하와이를 거처 일본, 중국, 필리핀, 대한제국을 거치는 여정이었다.

    단장은 체중 147kg의 거구인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여기에 대통령의 딸인 스무한살 앨리스(1884~1980)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절단이 인천항에 도착(99)하자 고종황제는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에 따라 미국이 도와 줄 것을 기대하고 영랑(令娘;대통령의 딸)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궁내부 대신이 영접하고 황실악단이 미 국가를 연주했으며 황실 가마로 숙소로 이동하였다.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는 1112일 동안 파티와 만찬, 여행을 즐기고 떠났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고종은 중립국을 선포하였지만 주권침탈 위기에 봉착한 대한제국은 미국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고 미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앨리스를귀빈 중 귀빈으로 대접하였다. 고종은 우리는 미국과 약속한 것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태프트는 이미 일본에서 가쓰라와 조선에 관한 밀약을 체결한 후의 방한이었다. 제국은 두 달 후 을사늑약을 맺어야 했고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국제정세에 무지했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제국은 국가멸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환송연 때 선물로 받은 황제의 사진은 한국인이 촬영한 가장 오래된 고종의 사진으로 大韓皇帝眞光武9年在慶運宮金圭鎭照相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으며 현재 미국 프리어-새클러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고종은 밀약기념으로 벚나무가 선물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밀약의 주인공 태프트는 루즈벨트(1901~1909)에 이어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이 되었다.

    미카사(三立) 공원

    일본은 러시아와 벌인 대한해협 전투승리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도고제독이었고 기함()으로 활약한 미카사호를 상징적인 징표로 기리고자 했다.

    하지만 미카사는 전승 기념행사 직후 사세보 항에 정박 중 폭발사고로 침몰(1905.9.11.)하였다. 이듬해에 인양하여 수리한 후 운용하였으나 이후 퇴역 처분(1925)되어 전승 기념함으로 도쿄 인근 요코스카시에 영구 안치되어 전시관으로 개조된 후 관광객을 맞고 있다. 미카사는 러일전쟁에서 23발의 포탄을 맞고도 건재했으나 이후에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주일 미군과 자위대의 해군기지인 요코스카에는 미카사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미카사호를 배경으로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의 동상이 서있다. 이 공원은 일본100대 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대마도 전승기념비

    대마도는 수천 명의 러시아 수병들이 수장되거나 상륙하여 목숨을 건진 곳이다. 히타카츠항 북동쪽 도노사키(殿奇) 벼랑 위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러시아군 전몰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제정 러시아 황제가 전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1912)고 한다. 일본은 이곳을 ·러우호의 언덕으로 명명하고 위령비 맞은 편에는 러일전쟁 100주년 전승기념비(2005)를 세웠다. 부상당한 로제스트 벤스키 제독이 사세보 해군병원의 침상에 윗몸을 일으킨 체 도고 제독의 병문안을 받는 모습이 청동부조(浮彫)로 새겨있다.

    하필이면 이 장면을? 하는 묘한 생각이 들면20201023130938.jpg
    서 저들의 저의를 짐작케 한다
    . 비석 하단에는 큰 글씨로 우측에 평화(平和) 좌측에는 우호(友好)라고 새겨져 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우호라니 어이없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외양포 요새사령부 축소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러일전쟁이 끝나고 임무를 다한 외양포 요새사령부의 포병부대는 기능이 축소되면서 요새 포병중대만 남기고 본토로 원대복귀 하였다.

    이후 요새사령부는 진해만을 군항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포병부대를 재편성하여 마산으로 옮겼다. 이후 다시 진해면 좌천리에 신축 요새사령부가 완공되면서 확대 개편하여 이동하였다. 외양포의 잔류 군사시설은 진해만 사령부의 예하부대로 기능을 계속 유지하였다.

    러일전쟁을 위해 긴급하게 구축되었던 외양포를 비롯한 주변의 군사기지들은 저들의 발판이 되어주었고 향후 4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일본군의 군사요새지가 되어 조선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는 불가항력의 땅이 되고 말았다.

    배종진/강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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