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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99 호 | 기사입력 [2020-08-24] | 작성자 : 강서구보

불운한 과거도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

  • 지난 815일은 제75주년 광복절이었다. 이날은 우리 선조들이 혹독했던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날이다. 일제 36년은 우리에게 잊힐 수 없는 수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그 생채기가 남긴 아픔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강제징용 보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적절한 보상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도 당시 일제의 흔적이 오롯하게 남아 있는 곳이 많다. 강동동 신평마을 격납고 주택과 대저1동에 있는 적산가옥, 그리고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터 등이다.

    광복절을 맞아 이들 일제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어둡고 불운한 과거지만 자녀와 손을 잡고 한번쯤 둘러본다면 생생한 역사교육의 장이 된다.

     

    신평마을 비행기 격납고 주택

    김해국제공항 대한항공 정비창 서편 철조망 옆 대저2동 신평마을에는 모양이 조금 이상한 건물이 몇 채 있다. 커다란 아치형태의 특이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은 비행기 격납고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이곳을 강제 점거, 활주로와 격납고를 만들었다. 격납고는 먼저 둥근 흙무더기를 크고 작게 만들어 그 위에 갈대 삿자리를 깔고 콘크리트를 부어 굳힌 뒤 흙을 파냈다. 모양은 큰 반원과 그것보다 작은 반원이 앞뒤로 이어진 형태이다. 당시 일본군 훈련기인 일명 잠자리 비행기(아카돔보) 격납고다.

    흙은 인근 덕도산에서 채취했으며 강제 동원한 주민들과 부산교도소 재소자들이 맡았다. 패망한 일제가 물러가고 격납고와 활주로가 방치되자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주민들과 그 뒤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 들어와 살며 창고 등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국방부가 1961년 김해비행장을 확장하면서 옛 비행장 땅을 수용하고 격납고도 대부분 헐리게 됐다. 토지는 국방부 소유지만 현재 남은 4곳의 격납고는 거주자가 주택, 창고, 공장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격납고는 철근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두께가 80나 되며 내부 면적이 80평에 가까워 널찍하다. 이들 격납고는 일제강점기의 억지 수용, 강제동원 등 일제만행을 보여주는 훌륭한 향토자료와 교육자료이다.

     

    대저1동 일본인이 남긴 적산가옥

    대저1동 강서고등학교 뒤편에 정원이 딸린 커다란 낡은 왜색풍의 기와집이 한 채 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농지를 싼 값에 불하받아 농사를 지으러 온 일본인 이주민의 집이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각종 정원수가 잘 어우러진 양호한 상태의 일식 농촌가옥으로 이른바 적산이다. 이런 집은 적이 남기고 간 재산이라 해서 적산가옥으로 불리며 아직 대저동에 여러 채가 남아 있다.

    당시 대저동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낙동강 제방공사를 하고 확보한 농지에 배농사를 위해 이주한 일본 농민들이 많았다. 이 집은 목조가옥으로 지붕이 중층인 전형적인 일본 농촌주택의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양덕운씨가 수십년 동안 생활하며 대부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난 20127월 부산시가 근대근조물로 지정했다.

    양씨의 주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이국찬씨의 주택도 일본인이 살다 간 적산가옥이다. 내부 구조는 그대로지만 지붕은 비가 새 우레탄으로 코팅했다. 위치가 도로가여서 높은 담장 때문에 일식 가옥이라고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옆이나 뒤쪽에서 보면 주변 건물과 구별되는 영락없는 일식 가옥이다. 오래 전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일본인이 찾아오기도 했다는 이씨는 집 관리가 무엇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가덕도 일본군 포 진지터

    부산에서 가장 큰 20200824181841.jpg
    섬인 가덕도는 천혜의 자연풍광을 자랑한다
    . 그 중 외양포는 가덕도 남단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새로 뚫린 짧은 터널을 지나 마주치는 마을은 뭔가 분위기가 남다르다. 마을을 가만히 살펴보면 긴 지붕에 색깔이 다르고 여러 가구가 사는 곳이 제법 많다.

    이곳 외양포는 100년 전 일본군이 진주, 마을주민들을 쫓아내고 군사시설을 했다. 일본군이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며 포대인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했던 곳이다. 그 뒤 패망을 맞이한 일본군이 물러가자, 원래 이곳에 살던 주민들 등이 찾아 삶의 보금자리를 틀었다.

    외양포 마을앞 방파제 앞 낚시점겸 매점은 헌병대 막사 자리다. 마을 중간 쯤에 병사막사 건물과 붉은 벽돌로 쌓은 우물터가 보인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는 포진지터 등이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 쓴 채로 있다.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은 목조형태의 길쭉한 건물이다. 건물의 창에는 일본건축 양식에서 보이는 눈썹창이 붙어 있다.

    외양포를 둘러싼 주위의 산봉우리에는 관측소와 대공포가 있었다. 산봉우리 관측소는 포진지와 연결됐으며 말을 이용, 탄약 등을 달랐다고 해서 말길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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