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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21 호 | 기사입력 [2014-02-25] | 작성자 : 강서구보

(박상기의 강서이야기)

 

진해만요새사령부 해군비행대 대저2동 신평마을 비행기격납고



김해비행장 서북쪽에 있는 강서구 대저2동 신평마을에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의 진해만요새사령부 진해해군항공대의 비행기 격납고가 남아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김해공항을 중심으로 인근 여러 마을에 20여개의 많은 격납고가 만들어 졌으나 김해공항 확장공사로 거의 없어지고 현재 신평마을 안에 4기만 남아있다. 

 

진해만요새사령부는 1940년대 초부터 일본해군 비행대 훈련을 강화하기 위하여 대저2동 칠점산을 깎아서 진해만요새사령부 해군항공대 전용 비행장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울만리 조병대(84) 옹의 증언에 의하면 이 격납고에 보관한 진해 일본해군항공대의 훈련연습기는 소형 비행기인 빨간 잠자리비행기(아카 톰보 히꼬키)로 알루미늄 골조에 천[布]으로 씌어져 빨간 칠을 한 복엽 날개를 가졌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험한 날이거나 밖에 두면 넘어지거나 다칠 우려가 있어 작은 격납고를 만들고 사람들의 힘으로 밀어서 격납고에 넣었다가 출격할 때는 다시 사람들이 밀어서 밖으로 끌어낸 다음 프로펠러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건 다음 움직이는 비행기였다.

 

초창기 활주로가 없을 당시에는 비행기 밑에 부표를 달아서 비행선처럼 평강천에 앉기도 했다고 한다. 격납고를 만드는 방법은 흙을 쌓아서 동산처럼 만들고 그 위를 두드려서 다진 다음 잘 다듬어서 갈대 삿자리를 거푸집 삼아 깔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두껍게 올렸다.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어지면 속에 채워진 흙을 파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쓰여 진 흙은 제자리에서 긁어모아 쓰기도 했지만 강동동 덕도산에 인공동굴을 파서 나온 흙을 철로를 깔아서 이울나루를 건너서 신평마을까지 운반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격납고 설치작업에는 인근주민들이 강제로 동원하다시피 하여 매일 작업할 때마다 전표를 주어 그 전표로 옥수수나 밀가루 등을 바꾸어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소득이 낮고 일자리가 없었던 주민들은 굶주림을 벗고자 애국심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생계수단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격납고를 만들기 위하여 흙을 파낸 덕도산 인공동굴은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었으나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훈련용으로만 사용되었을 뿐 군사용으로 활용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 비행장과 격납고가 남아있는 곳은 신평마을을 포함하여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아르뜨르비행장 격납고와 경남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와 연금리에 구비행장 격납고가 남아있다. 이들 격납고 가운데 제주도 비행장 격납고는 일본군 비행단 특공대 소위 ‘가미가제 특공대’가 타던 전투기를 보관하던 곳으로 신평마을의 격납고보다 규모가 큰 전투기를 수용하던 곳이나 밀양의 격납고는 비행기의 종류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밀양과 제주도는 비행기 격납고를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하고 있으나 신평마을 격납고는 문화재로 등록하지 못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등록문화재 제38호 ‘남제주 강병대교회’, 제39호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제157호 ‘구 대정면사무소’, 제409호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 등 4개소에 대해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남제주 강병대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정식으로 설치되면서 훈련 장병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1952년 건립된 교회 건물로,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2007년 강당 지붕 보수공사를 시행한 바 있으나 교회 첨탑이 노후한 탓에 태풍 등 강풍에 자주 파손되면서 이번에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보수에 나서고 있다.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와 상남면 연금리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는 연접 마을에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양쪽은 산으로 되어 있고 앞쪽은 길게 직선을 이루어 비행기가 확 트인 밀양벌판으로 나가게 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격납고는 터널 형으로 지름 약 13.6m, 높이 약 3.1m, 길이 약 13m의 철근 콘크리트구조물로 두께는 약 25cm정도이다. 내부표면에 가마니 무늬가 선명한 것은 격납고를 만들 때 흙을 반월형 모양을 만든 후 그 위에 가마니를 놓고 콘크리트를 부어 고정한 다음 흙을 제거하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는 앞쪽의 밭에 철조망이 쳐져있어 접근하기 어려웠고 내부에 농기구를 넣어두고 있었고, 상남면 연금리에 있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는 내부에 집을 지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밀양 구 비행기격납고 등록문화재 제206호 194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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