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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24 호 | 기사입력 [2022-09-23] | 작성자 : 강서구보

성묘를 다녀오며(강서칼럼) /홍화자(수필가)

더위가 한풀 꺾인 낯익은 산길이다. 억새를 스치는 바람결에 가을 꽃향기가 묻어온다. 인간의 만남을 시기하듯 방해하던 코로나의 대유행 때문에 가까운 가족끼리의 왕래도 어려웠던 날들이었다.

몇 년 만에 가족이 모여서 나서는 성묘길이다.

작은 비닐 팩 안에 술 한 병과 사과, , 청포도 한 송이 챙겨 들고 온가족이 함께 아버님 산소를 향해 산길을 걸었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어린 손자가 지루한지 칭얼거린다.

조금 이른 절기의 추석 때문인지 아직 미련이 남은 여름 날씨의 끝자락이 주춤거리는 모양이다.

내가 어리던 시절에는 얼마나 명절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어른들은 명절이나 되어야 새 옷이나 새 운동화를 명절빔으로 장만해 주었다.

새로 산 운동화를 빨리 신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명절날 신어라는 어른들 말씀에 이불 속에서 운동화를 품속에 끌어안고 잠들기도 했다.

명절이면 그때 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싫 컷 먹을 수 있었기에 더욱 좋았다. 그뿐인가 명절 전 날이면 멀리서 오는 친척들을 기다렸다.

동네 어귀 정자나무 그늘에서 해가 설핏하도록 기다리던 마음속에는 친척들이 사오는 선물 꾸러미에 양말이나 학용품 같은 내 몫의 선물이 더러 있었기에 더 기다렸던 것 같다.

어느 해 추석 명절이었다.

서울 사는 당숙이 내 책가방을 선물로 사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시골에 사는 내 또래 아이들은 모두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두르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동화속 신데렐라라도 된 것처럼 책가방을 들고 신이 나고 행복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다.

요즘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의식주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가난과 무지를 후대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조상들의 힘겨운 희생으로 그나마 지금 내 자식들과 손자 세대는 풍요를 누리며 굶주림을 모르고 살고 있다.

가끔은 IMF 금융위기 때의 어려움이나 지금도 진행형인 코로나19같은 고달픔도 겪었지만 그래도 현재는 아름답고 좋은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버님 봉분 앞에 돗자리를 폈다. 작은 쟁반에 조촐하게 과일을 차리고 술 한 잔을 올렸다.

봉분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남편의 구부정한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옆자리에 엎드린 아들의 모습은 젊은 날 보았던 남편의 어깨를 꼭 닮았다. 우람하고 믿음직한 모습이다.

지금껏 예사롭게 여기며 살아왔던 날들이다. 구부정하고 왜소해진 남편의 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하는 연민이 스친다. 길고 어려웠던 먼 길을 가난한 집 가장이라는 멍에를 지고 힘겹게 달려오느라 힘에 부치고 많이 고단했으리라. 그 어렵던 지난 시간들을 부부라는 공동체의 집합 부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수시로 몰려오는 삶 속의 파도와 많은 풍랑을 헤쳐 나오질 못했을 것이다.

이제 젊은 날의 우람했던 믿음직한 어깨는 사랑의 징표로 아들의 어깨에 걸어준 남편이 그 옛날 살아 생전 아버님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부터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노을 색처럼 밝고 건강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머니 이 꽃 이름 뭐야?”

어느 새 앞서서 산길을 내려가던 손자 녀석이 골짜기에 핀 구절초 꽃 서너 송이를 꺾어다 내게 내민다.

으응, 향기 좋은 구절초 꽃 이란다

자식보다 열 배 정도 예쁘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스러운 손자가 내민 꽃의 향기를 맡아본다.

가느다란 줄기에 피어난 구절초 꽃의 짙은 향기 속에는 아련한 조상님들의 삶의 애환이 스며있는 듯하다. 인생살이 쓰고 단맛들이 어우러진 싫지 않은 꽃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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