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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06 호 | 기사입력 [2021-03-24] | 작성자 : 강서구보

강서칼럼-버들길 걷기(홍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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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얼음이 녹은 땅은 촉촉하다.

어느새 봄은 성큼 강변이나 논밭으로 달려온다. 고니 가족이 고향 찾아 떠나간 강 언저리에 흐르는 물소리만 한가롭다.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어느 미식가는 남녘의 바닷가 도다리 쑥국 맛에서 봄은 시작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의 불편함 때문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음 놓고 나들이 하기가 조심스럽다. 겨우내 발길이 뜸했던 외진 길을 혼자 걸어보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부산의 변두리, 낙동강 끝자락의 갈대가 지천인 강마을이다. 마을에서 떨어진 인적이 드문 자연생태 그대로의 갈숲을 지나면 버들길이라고 써 놓은 오래된 팻말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 강변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이곳 버드나무는 누가 심어서 가꾸지는 않은 것 같다. 그저 버들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서 갈대숲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자란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물을 좋아하는 버들은 습기가 많은 곳이면 강한 적응력으로 다른 나무들보다 성장이 훨씬 빠르다. 삼사 년 자란 버드나무들은 연두 빛으로 넓은 강변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어느 새 강변 언저리의 갯버들나무는 투구처럼 겨우내 쓰고 있던 작은 모자를 벗어 던져버렸다. 뽀얀 버들강아지들이 보드라운 모습으로 길손의 눈길을 끈다. 나는 맑은 강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물거울 속에는 버들강아지 그림자와 함께 까맣게 잊었던 얼굴들이 하나 둘 일렁이는 물결 속에 웃고 있다.

유년시절 우리들의 놀이터는 내 고향의 강변이었다. 개울가에서 삐이삐이 순이가 불던 호드기 소리가 들려온다. 뿌우우~ 긴 호흡의 날숨으로 부는 호야 오빠의 굵직한 뱃고동 소리를 닮은 호드기 소리도 들린다. 나는 순이와 함께 나물캐기는 잊어버린 채 비어 있는 나물바구니는 아랑곳없이 호야 오빠가 만들어 주는 호드기소리에 반하곤 했었다. 오빠는 언제나 우리에게는 새끼손가락 같은 가늘고 짧은 버들가지로 보잘 것 없는 호드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가 즐겨 불던 퉁소같은 큰 호드기로 크고 굵직한 소리를 냈다.

매듭이 없는 매끈하고 굵은 버들가지를 골라서 이리 저리 비틀어서 나물캐던 칼로 자르면 뽀얀 버드나무 속대가 신기하게 빠져나왔다. 호야 오빠의 호드기 소리는 우렁찼다. 뿌우웅~ 하고 아버지의 퉁소 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우리한테도 큰 호드기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댔지만 어림도 없었다.

너희들은 어려서 불기가 힘들어 에헴.”

혼자만 멋진 소리로 호드기를 불면서 으스대기가 예사였다. 어린 날 봄 강변에서 우리들의 놀 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자갈밭에 알을 낳고 알을 지키는 꿀룩새를 잡으러 뛰어다니다 지치면 모래밭에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놓고 개미가 구덩이에 빠지기를 지켜보는 기다림의 승부사였던 개미귀신을 모래 속에서 찾아내곤 했었다. 긴 봄날은 강물처럼 어느새 흘러가버렸다.

작은 인기척에 놀란 장끼 서너 마리가 갈대숲에서 공중으로 푸드득 날아오른다. 혹시나 그 옛날 찾아다니던 개미귀신의 함정이 있을까하고 내려다 본 강변 모래톱에는 크고 작은 고라니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큰 발자국 옆에 종종종 작은 발자국이 선명하다. 어미 고라니는 어젯밤 희미한 하현달 아래서 어린 고라니에게 밤새 어떤 세상살이를 가르쳤을까? 아마도 서서히 무너져가는 자연생태계 앞에 어린 새끼에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훈련 시켰을 런지도 모른다. 큰 발자국을 졸졸 따라간 작은 발자국에게 힘내라고 엄지 척으로 응원을 보내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두려움의 파도는 봄날의 희망을 희석 시키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느 해 언제 한 번이라도 봄이 오지 않은 때는 없었듯이 누구나 처음으로 겪었던 지난해의 혹독한 시련들을 새봄 들어 훌훌 날려버리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다. 혼자서 버들길을 걸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코로나19 예방백신의 소식은 태양의 온기만큼이나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준다. 유한한 우리의 삶에 이 봄은 모두에게 찬란하고 희망 가득한 계절이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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