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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03 호 | 기사입력 [2020-12-24] | 작성자 : 강서구보

강서향토사-대항 절벽의 일본군 동굴요새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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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항전 위한 동굴

가덕도 서편 대항포구를 중심으로 천성항까지 이어진 북쪽 해안선은 깎아 세운 것 같은 단애(斷崖)지역이다. 연대봉 자락이 바다에 이르면서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해식애(海蝕崖)가 형성되어 기이한 모습이다. 이 절벽에 일본군은 인공동굴 요새진지(要塞陣地)를 구축했다.

동굴요새는 바다에 나가서 바라보아야만 겨우 식별할 수 있다. 동굴이 있다고 인지한 상태에서는 힘들게 찾을 수 있지만 그냥 볼 때는 주변지형과 어울려 식별하기 어렵다. 일본군은 왜 이런 절벽에 개미굴 같은 동굴을 뚫었을까?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말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반도 남단에 결사항전의 동굴요새 진지를 수없이 구축했다. 미군이 일본 본토 공격에 앞서 한반도에 2~5개 사단을 상륙시켜 교두보를 확보할 것으로 본 일본군은 유황도(硫黃島)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결사항전 했던 것처럼 동굴 요새만이 최후의 저항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규모와 특징

수많은 바위 틈새가 들쭉날쭉한 해변으로 노출된 동굴의 입구는 5개소이다. 해수면으로부터 약 8m 높이의 암반 속에 횡으로 굴착된 동굴(주 동굴선)의 길이는 무려 175m로 매우 길다. 바다 쪽으로 뚫려있는 2개의 출구는 가로 약 6m에 높이 6m 종심 20m 정도로 크고 넓은 편이며, 주 동굴선에서 바다 쪽으로 빠져나와 있다. 동굴 출구가 지향하는 방향은 가덕수로의 대죽도 앞쪽 바다 쪽이다.

동굴에 진입하는 방법은 북쪽끝 부분에 식별하기 어려운 은밀한 골짜기(쉽 사이골)’가 있어 이곳에 배를 접안하고 올라야 하며, 이곳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한 지형의 특이점을 제대로 활용한 곳이다. 이 골짜기에는 3개소의 동굴 입구가 보이는데 맨 하단부가 주 동굴선으로 진입하는 출입구이며 이곳을 통해야 주 동굴선에 유일하게 진입이 가능하다. 약간 위쪽에 2개의 동굴이 있으나 종심이 깊지 않은 방모양의 공간(탄약고, 장비고, 발전실 등)이다.

공사과정을 추정해 보면 해안에서 쉽 사이골방향으로 진입하여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대략 폭 3m, 높이 3m의 동굴을 해안선을 따라 뚫고 나갔으며 바다가 잘 보이는 중간지점에 2번 출구를 바다 방향으로 뚫고 70m 쯤 지나 1번 출구를 뚫었다. 출구라지만 바다에 떨어지는 절벽이다. 1번 출구를 지나 주 동굴선은 계속 남으로 이어지게 굴토하다 중단된 흔적이 남아있는 미완의 동굴진지이다.

전술적 용도

대항 일대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일본군 함대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진해만의 입구이다. 동굴은 포대와 중화기(重火器)를 배치하여 진해만으로 진입하는 적 부대(함정)들을 제압하기 위해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동굴의 크기와 지형, 사거리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동과 설치가 용이하고 발사속도가 빠른 산포(山砲; 6개로 분해 가능)또는 75밀리 90식 야포 등을 배치하여 기습적인 화력을 운용할 수 있는 해안거점으로 만들었다.

동굴 포대의 대포들은 곡사 화기지만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직접 조준 사격이 가능해 해안포(海岸砲)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원거리에서 접근하는 함정은 일차적으로 외양포 포대에서 타격하고 이를 통과한 적 함정들이 진해만으로 진입 시 기습적으로 포격하기에 적합한 전술적 위치이다. 항공기의 폭격도 후 사면에 가파른 연대봉이 있어 불가능한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최고의 요새진지이다. 하지만 부대배치 기록을 알 수 없고 계속 굴토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공사가 계속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동굴 진지는 진해만사령부 예하의 외양포 포대의 통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후의 옥쇄진지

대항 절벽요새 동굴은 유황도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병력과 화력의 절대적 열세이던 일본군은 동굴전투에서 미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시간을 끌며 버틸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말기 일본군은 전쟁물자가 크게 부족했다. 특히, 대포용 포탄은 매우 부족하여 철저하게 사격통제를 받아야 했는데 이곳은 최소한의 탄약으로 최대한의 기습효과를 노릴 수 있는 지점이며 전황이 불리해져도 피할 수 없는 곳이다. 대항 일대가 지상부대에게 점령당하여도 최후의 1인까지 싸워야만 하는 곳이다. 끝까지 밀릴 경우에는 바다로 뛰어 들어 옥쇄(玉碎)할 수밖에 없는 지옥의 입구에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요새동굴인 셈이다.

관광자원 활용

강서구는 2015년부터 이 동굴을 대항항을 기반으로 한 친수공간과 관광체험장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상접근이 불가하던 동굴을 해안 쪽으로 약 8m 높이에 폭 1.5~2.4m의 데크로드를 조성하고 동굴 탐사가 가능토록 만들었다. 대항항에서 접근하는 계단을 올라 약 350m정도 데크로드를 걸어가면 1번 동굴 입구인 초대형 대포 조형물을 만날 수 있고 그곳으로 진입하여 주 동굴선을 탐사할 수 있도록 했다. 2번 동굴 입구는 가덕도의 상징인 대구를 형상화하여 거대한 대구의 아가리 속으로 진입하는 모양을 연출했으며 주 동굴선과 합류한다.

주 동굴선 바닥에는 타공볼(구멍 뚫린 둥근 조명기구) 조명이 설치돼 있고 벽면에는 포진지의 역사를 담은 그림타일에 투광조명이 비치며 아쿠아 투광, 홀로그램 등으로 갖가지 조명이 비추어져 동굴의 신비감이 들게 한다. 그밖에도 일제의 흔적들을 전시하고 동굴을 파던 작업현장을 연출했다. 또한 동굴마다 주제를 두어 1번은 포진지 체험, 2번은 바다속 체험, 4번은 일몰 포토존, 5번은 소원의벽으로 조성하였다.(3번은 주 동굴) 그리고 쉽 사이골은 친수공간으로 꾸며 바다를 바라보는 아늑한 휴식공간으로 조성해 두었다.

대항동 일대의 일본군 군사 시설물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점은 또 하나의 문화유산으로서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강제 동원된 조선인 징용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고통의 산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배 종진/강사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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