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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02 호 | 기사입력 [2020-11-23] | 작성자 : 강서구보

(강서칼럼)노적봉 단산-서태수

앙상한 몸피가 드러나는 계절이다. 낙동강 기수역(汽水域)의 외로운 지킴이로 선 노적봉은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민물과 짠물이 몸을 섞는 기수역에서 함께 도란거리던 숱한 옛 섬들. 멀리 북쪽 덕도산은 허리까지 뭍에 파묻혀 꼼짝달싹 못하고, 아침저녁 햇빛으로 안부 전하던 동쪽의 칠점산은 세상의 빌딩 속에 뭉개어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한쪽 발끝은 개척의 새역사를 지향하는 뭍에다 묻고, 다른 발등은 강물의 원초적 애환을 들으면서, 인간 세상 20세기를 조망하는 노적봉은 어떤 새로운 번민에 빠졌을까.

수수만년 지구 역사에서 예나 제나 물머리 부서지며 사멸과 탄생의 소용돌이가 이는 기수역에 이제는 노적봉만 쓸쓸하다. 눈앞에는 허허로운 갯벌이 치맛자락을 펼쳤다. 일천 삼백 리 굽이굽이 흘러내린 낙동강 끝자락의 서쪽에 비켜서서 강과 바다의 하소연을 일일이 다 보듬어야 하는 기수역의 오지랖은 무척이나 폭이 넓어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강둑도 등을 돌리는 곳. 기댈 언덕을 잃어버린 강물은 난바다 저쪽 시퍼런 수평선으로 나아가기 위해 단단한 몸을 풀어 헤쳐야 한다. 노적봉이 무어라 위무하든, 강물은 발길 머뭇거리며 스쳐온 흔적들을 되돌아 보아야 하는 시공간이다.

길든 짧든, 깊든 얕든 어느 물길인들 절로 흥청거리며 흘러 왔으랴. 한 톨 맑디맑은 물방울로 솟아나 실개천을 울리고 낭떠러지를 굴러 강물이라 이름 얻고 흘러온 파란만장의 세월이 아니던가. 한 생애 맑은 수면에 바람 잘 날 몇 날이던가.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미당의 국화꽃밭 앞에도 서 보았고,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꽃으로 피어춘수의 뜨락을 거닌 계절도 있었다.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청마의 깃발로 펄럭이기도 했지만 사람의 땅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땅을 적시며 함께 끝까지 가기 위해 둥근 물방울을 깨뜨리고, 완고한 물줄기를 풀어헤쳐 강물 속에 함께 흘렀다.

수많은 지천과 지류가 모여 도도히 흐른 우리의 강물은 언제나 지혜로웠다. 기수역에 이르러 생각해 보면 낙동강은 온갖 사연 다 모여 함께 뒹구는 한 폭 종합예술의 두루마리다. 깨뜨리지 못한 강고한 물방울은 과거와 미래가 맞부딪쳐 소용돌이치는 기수역에 와 보면 안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이라며 고개 끄덕이던 김남조의 겨울 바다에 이르러야 할 계절이다. 쉼 없이 흘러온 나의 도도한 강도 이제는 몸도 이름도 버려야 할 기수역. 나는 무엇으로 행복했으며 또 무엇으로 불행했던가. 나의 그 잘난 판단은 무엇이었으며, 굳게 믿었던 그 진실은 무엇이었던가. 내 손톱 밑의 가시는 아직도 이렇게 아린데, 내가 던진 표창은 어느 가슴팍에 꽂혀 꿈틀거릴까.

이 기수역을 지나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나의 물줄기 속에 고슴도치로 웅크린 밤송이들, 좌든 우든 흑백이든 청홍이든 부질없는 알갱이들은 낱낱이 풀어헤쳐야만 함께 스며들 수 있다면서, 허허로운 갯벌은 김환기의 물방울화폭으로 펼쳤다.

밀물지고 썰물 들어 채우고 또 비우는 갯벌은 기수역의 상징. 갯벌은 용트림으로 엮어온 단단한 강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질펀하게 가슴을 펼쳤다. 뭍과 바다 양쪽에 발을 담근 노적봉은 아직도 순리로 흐르는 자연과 창조로 내닫는 인간 사이에서 근원적 해답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수만년 일고 잦는 기수역의 소용돌이를 지켜온 노적봉은 강물의 지혜로 일깨워 준다. 한 생애를 그렇게 흘러왔듯이 인생의 굴곡을 스스로 풀어나가라고 눈짓한다.

해가 뜨면 그림자 지고, 꽃이 피면 열매 맺듯, 만고불변의 진리는 언제나 상징과 묵언으로 해답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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