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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가덕도동

가덕도동의 지명유래는 조선중종 37년에 가덕도에 천성 만호진과 가덕진을 설치하여 왜구의 침입을 막았고 1906년에는 웅천군 천성면, 가덕면을 설치하였으며 그후 1908년에 두면을 합하면서 두면의 머릿글자를 따서 천가면이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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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동 지명유래
동 명 자연마을명 유 래
가덕도동 동선 (東仙) 지난 날 창원군 천가면지역의 동쪽 선창이 되므로 동선서 동선이라는 지명이 되었는데, 동선리에는 동선 본동마을과 동쪽으로 향교가 있었던 생교마을의 동쪽 끝에 세바람을 많이 받는 곳으로 새바지 갯마을이 있는데 새바지에서 눌차까지 새바지 둑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 둑을 ‘터질 목’이라고도 한다.
성북 (城北) 선창마을의 선착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5분여만에 닿는 가덕도동의 중심지인 성북리 본동은 논 밭농사를 위주로 살아가는 지역이다. 서북쪽으로 구곡산과 삼박봉, 서남쪽으로는 응주보과 연대산이 둘러 싸여 있는 성북리 본동에는 가덕도동사무소와 북구서, 천가파출소를 위시해서 천가우제국, 천가보건지소, 농촌지도소, 농협조합 등의 기관이 있고 학교 시설은 천가초등학교와 덕문 중 고등학교가 있다. 문화유적은 갇거진성 성터가 남아있고 가덕도동사무소 앞에 조선시대 수군 절제사의 송덕비 4개가 있다.
선창 (仙倉) 가덕도동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성북리 선창은 예로부터 가덕도와 용원을 잇는도선의 기점이었는데 서북쪽갈마봉 동쪽 끝에 대원군 척화비가 노변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천가초등학교에서 옮겨 관리해 오다가 다시 원래 자리였던 마을회관 앞 큰 길가에 세워 놓았다. 이곳 선창은 옛 가덕청사 시절에는 수군 함정의 군항지였다.
율리 (栗里) 선창마을에서 서쪽으로 갈마봉 해안선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밤나무가 많아서 밤꿈마을로 불려졌던 율리마을이 있다.선창에서 율리로 넘어오는 고개를 밤꿈고개라 부르고 고갯길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골짜기를 불미골이라고 한다. 율리 동쪽에 있는 저수지를 밤꿈곡저수지라고 하며 밤꿈 동남쪽에는 성북리저수지가 있다 그리고 율리 동쪽으로는 일방염 갯가가잇다.
장항 (獐項) 장항마을은 바위 절벽 위로 소나무가 무성한 독뫼산을 끼고 있는 곳으로 노루목처럼 생긴데다 노루목 위치에 있어 노루목이란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장항의 해안일대를 개안이라고 하는데 서남쪽으로 고직말 곶이 있고 뒷산 무등능선에 있는 남쪽바다에 띠밭꿈 갯가가 있으며 남쪽 당산곡을 넘으면 옛날 열 몇 세대가 살고있었다는 배오개 마을이 있다.
항월 (項越) 눌차리 항월의 목은 머리와 몸을 잇는 잘록한 부분이란 뜻과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중요한 길의 좁은 곳을 일컬을 때 목이라고 하며 행정명칭으로 항월이 되었음
두문 (斗文) 천성리 서중마을 북쪽에 있는 두문마을은 옛날 앞바다에서 생선(청어)이 많이 잡혔는데 한 마리씩 헤아리기가 시간이 걸리므로 말로 되어서 매매했다는 어원에서 생긴 마을 이름인데 본래는 먹걸이라고 불렀다.
서중 (西中연) 천성리 본동에는 두문 마을에서 망넘골 끝을 보고 해안을 따라 활등처럼 굽어돌아 천성만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 가운데 일자로 나 있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북쪽은 서중마을로 천성리의 중심이 되고 남쪽에는 남중마을이 됨.
남중 (南中)
대항 (大項) 대항리에는 본 동의 음달 양달 마음과 새바지마을. 외양포마을이 있다. 천성리에서 천성고개를 넘어 동쪽에 연대봉 기슭과 남쪽의 국수봉기슭이 잘룩하게 이어지는 목 서안에 대항리 본 마을이 나온다. 그래서 대항을 큰 목, 한목이라고 부른다
외눌 (外訥) 가덕도 동북단의 섬마을로 섬의 형태가 본섬과는 달리 유달리 완만하고 낮아 꼭 누워 있는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내눌 (內訥)
정거 (釘巨) 파고가 심하여 배가 잘 터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 파도가 잔잔할 때까지 닻을 메어 놓고 디라린다는 뜻

천가동

천가 행정리명과 마을이름
눌차리 ― 내눌 외눌 항월 정거리 대항리 ― 대항 세바지 외양포
동선리 ― 동선 생교 세바지 성북리 ― 선창 율리 장항
천성리 ― 두문 서중 남중  
사진

천가동은 낙동강 물이 남해로 흘러드는 강 하구의 남쪽에 위치한 가덕도와 연안의 무인도 11개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면적20.96㎢의 도서지역으로서 영도의 약 1.6배가 되는 부산에서 최대의 섬이다. 가덕도는 김해의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 되었다가 다시 솟아서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데 지형을 살펴보면 섬 남단의 동두말을 정점으로 2등변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바 전체적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높은 산이 해안에 절박하여 대부분이 급경사를 이룬다. 최고봉인 연대산을 위시하여 북으로부터 국수봉 문필봉 갈마봉, 구곡산 삼박봉, 강금봉 응봉산, 동묘산 웅주봉, 매봉, 성토봉, 국수봉, 남산 등 수많은 산들이 펼쳐져 있다. 해안은 동쪽과 남쪽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은 소규모의 곶과 만이 연이어져 드나듦이 심하고 북쪽 해안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파른 해식애(해안의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동북쪽으로 눌차∼동선사이를 이어주는 주변 백사장에서부터 기도원 앞 바닷가의 경관,동남쪽으로 대항 세바지의 넓은 자갈밭과 용두암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동백숲 과 외동섬 일대와 동두말가덕도 등대 주위의 깎아 지른 듯한 기암괴석, 서남쪽으로 돌아 외양포 해수욕장, 두문의 길게 뻗은 솔섬,천수말, 코바위 등 가덕도는 해금강의 절경을 방불케 해준다. 천가동의 취락은 북서 해안의 포구와 남쪽해안에 분포하고 있는데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적이 발굴되었다. 1992년 부산여자대학교박물관조사단에 의해 대항과 외양포 2곳에서 신석기시대 전기∼후 기까지의 다양한 토기가 발견되었고 두문에서 지석묘가 발견되었으며 그리고 성북 선착장 인근에 7∼8세기 가야시대 말기의 유적과 지표조사에서 청자편까지 나타나 가덕도에는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종 39년(1544) 이 지역에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을 설치하였다.

그 유 적으로 가덕진 성과 천성진 성의 흔적과 조선시대 병기를 만들었던 곳집이 성북리의 덕문 중·고등학교 교정 자리에 조선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시대 왜군들이 외양포를 차지하여 포대진지를 만들었고천성에서 대항에 이르기까지 바닷가 산에 굴을 파서 진지와 관측소 등으로 이용하였다. 이 일대 토굴은 2차대전 말 대함사격요새였는데 가덕등대에도 일본 해군의 군사적 시설 등 침탈의 잔재가 남아 있어 상륙기념비가 현재 방치되어 있고 왜군 철수 후 우리나라 해군이 주둔하여 외양포는 진해 해군 사령부의 발상지가 되고 있다.

천가동 연혁

  • 1544년(조선 중종 37년) 가덕진과 천성 만호진을 설치, 가덕진관은 수군절제사가 주둔, 임진왜란 후 두 곳의 진을 안골포로 이전
  • 1656년(효종 4년)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을 옛자리에 복귀
  • 1859년(철종 10년) 현대식 군대개편으로 두 곳의 진이 폐지됨
  • 1906년 웅천군 천성면, 가덕면
  • 1908년 웅천군 천가면으로 합면
  • 1914년 창원군 천가면, 눌차, 동선, 성북, 천성, 대창 5개 리가 됨
  • 1980년 의창군 천가면
  • 1989년 부산직할시 편입. 강서구 천가동이 되고 천가 출장소가 설치됨.
사진

천가동 지명의 유래는 가덕도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뒤에 두 면이 합칠 때 천과 가가 합쳐져서 천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대체로 평지가 적은 지역으로 경지면적은 논 1.0㎢ 밭 1.82㎢로 경지율이 13%인데 주민의 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양파는 이 고장의 특산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가덕도에는 천성만이 가장 좋은 항인데 북쪽 해안은 비교적 넓은 간석지가 되어 굴 양식이 활발하며 가덕도와 거제도 북부사이의 뱃길로 폭 7.4㎢의 수도는 수심이 15∼35m정도로 서 크고 작은 도서와 암초가 널려 있고 근해연안에서 성행하는 수산업의 중심지이다. 옛 성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성 동쪽은 동선이 되었고 북쪽은 성북이 되었다. 눌차리와 동선동이 세바지 둑으로 연결되어 있어 눌차는 섬 중의 섬이다. 인력으로 구축된 둑이 태풍 등으로 허물어지면 그때 그때 다시 인력으로 둑을 보수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둑 길이는 약 500m에 이르며 안쪽은 선창쪽에서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여 굴종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

세바지둑 밖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가 만나게 되는 다대 모랭이인데 파도가 거칠기로 이름이 난 곳이다. 주된 해산물로는 2월∼5월에 잡아 올리는 숭어와 겨울에 잡히는 대구, 청어, 그리고 우수한 가덕 미역과 홍합, 바지락, 조개류도 많이 잡아 올리고 있다. 가덕수도의 동방에는 쥐섬이 있고 그 남쪽 5.5㎞에 목도, 목도의 서남 5.51㎞에 북형제도, 동쪽에 남형제도가 있으며 서쪽에 이수도가 있고 거기서 1.8㎞ 떨어진 곳에 암석군도인 갈산도가 있다. 또 가덕수도 입구의 중앙에 천가동 소속인 3개의 원추형으로 된 병산열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대죽도는 높이가 수면으로부터 117m나 되는 큰 섬이다. 그 밖에 마왕도와 연도, 송도, 수도 둥의 크고 작은 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외동도 인근에는 동배나무가 자생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가덕 물길의 경관은 남해의 한려수도에 뒤지지 않아 해상낙원이라고 일컬을 만한 곳으로 낙동강 하구와 어울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천가동의 명물로는 지금은 시대적 변천 속에 사라져 갔지만 가내공업으로 성행하여 양산 했던 가덕탕건은 한때 우리나라 전역에서 명성을 날렸다고 전한다. 가덕도의 교통편은 진해시 용원동을 왕래하는 도선이 있으나 천기가 불순하거나 야간에 교통이 끊겨 시급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8월부터 차량을 이용한 접근이 가능해지고 2010년 12월 부산과 경남 거제시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준공되어 지금은 섬이 아닌 섬으로 새로이 태어나 부산 발전을 견인하는 중추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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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과 / 문화관광계 (051-970-4064)
최근업데이트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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