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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87 호 | 기사입력 [2019-08-26] | 작성자 : 강서구보

강서향토사-강사의 자연마을과 민속신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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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입지
    (立地) 마을과 수호신(守護神)

    근래까지만 해도 전국의 자연마을 어귀에는 빠짐없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정초나 특별한 날 이 수호신들에게 제를 올리고 마을과 개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수호신으로 장승과 솟대를 세웠으며 서낭당(堂山)과 당산목(神木) 등에 고사를 지내고 치성(致誠)을 올렸다. 지역 환경에 따라 장승 이외에 돌무지, 선돌 등 특이한 영물을 그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복합신앙문화(複合信仰文化) 전통은 고대 사회에서부터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내려왔다.

    강서지역에는 157개의 자연마을이 들, , , 바다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평야입지마을(36%)이 가장 많고 하안()입지마을(30%), 산록입지마을(18%), 해안입지마을(16%)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입지 조건과 급속한 환경변화는 마을의 성격과 삶의 방식 또한 각양각색(各樣各色)으로 마을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평야지대 마을에서는 홍수와 가뭄, 염해(鹽害) 같은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어촌에서는 풍랑과 태풍 등이 생계를 위협했다. 여기에 질병(病魔, 疫神)과 병충해는 더없이 힘들게 하였으나 주민들은 이를 극복하고 마을을 지키면서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러한 재해들의 극복은 신의 영역이라 여겼다. 그래서 장승과 솟대 같은 영험 있는 상징물을 세웠고 서낭당, 당산목 등에 치성을 드리는 복합적 민속신앙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마을의 수호신장 대장군(大將軍) 벅수

    장승과 솟대는 주로 마을 어귀에 같이 서 있고 당산과 당산목은 좀 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모두가 한 곳에 있거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마을 수호신의 대표 격인 장승(벅수)은 무섭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익살스럽고 소박한 표정으로 조각하거나 그려져 있다. 몸통에는 주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의 글씨를 쓰거나 새겼다. 하단에는 마을간 거리를 표시해 두기도 했다. 즉 지상과 지하를 대장군(大將軍;음양가에서 길흉을 맡았다는 八將神 중 하나))이 통제한다는 뜻이다. 보통 남녀 한 쌍으로 세우는데 나란히 세우거나 마주보게 세우기도 한다.

    장승은 지방마다 그 이름이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장승, 장신이라 부르는 곳이 가장 많다. 다음이 벅수法首, 벅시 등으로 불리는데 길가에 세우는 위압적인 수호신장(守護神將)이거나 진압신(鎭壓神) 또는 노신(路神) 등의 기능을 가진 민속신앙(民俗信仰)의 대상이다. 우리 지방에서는 장승, 벅수, 벅시를 혼용하여 부르고 있다.

    속담에 벅수 같은 녀석’, ‘벅수 이빨을 세면 벅수가 된다’, ‘아이고 이 멍청이 벅수야’, ‘벅수같이 자빠진다’. ‘벅수같이 섰다등의 말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어리숙하고 멍청하게 서있는 벅수는 무섭게 생겼지만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친숙하고 만만한 성물(聖物)이었다.

    전국의 지명에도 이를 차명한 법수골, 법수배기, 벅수껄, 법수마을, 법수재 등 벅수와 관계되는 곳이 120여 개소나 된다. 이것으로 봐도 벅수는 마을과 공동운명체로 살아온 전통문화임을 알 수 있다.

    마을의 급격한 변화와 도시화는 이제 장승도 보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장승과 솟대는 공원이나 큰 음식점의 정원에 조경용으로 자리할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하지만 아직 2개 마을에 오랜 전통을 이어온 장승이 과거를 말해주듯 시공간을 초월하여 남아있다.

     

    가덕도 눌차 항월(項越; 목넘어)마을 석장승

    가덕도 동북쪽에 자리한 눌차도는 나지막하게 누워있는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 눌어붙다 라는 뜻이고 ()’는 누우려고 하는 형세를 보이는 모습이라 한다. 산 정상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 제6군으로 출정한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가 축성(159210)한 눌차왜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눌차 항월마을은 종패양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굴의 포자가 이곳 앞바다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통영 굴은 이곳에서 착란한 종패를 배로 싣고 가 통영 앞바다에서 양식하여 전국 최고의 굴 생산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근엔 이곳 정거마을이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이곳 목넘어(項越)마을 옛 해변 가에는 바다에서 용이 올라와 산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반석 위에 세워진 한 쌍의 돌장승을 볼 수 있다. 원래는 통나무를 3~4년 단위로 새로 깎아 세웠는데 목장승은 부식(腐蝕)이 빠르고 깎아 세울 일손도 없다. 그래서 2005년 마을회의를 통해 김해 석물공장에서 영구적인 화강암 장승으로 만들어와 현재 위치에 나란히 세웠다. 키는 150cm로 같지만 지하여장군석이 시각적으로 작게 보인다.

    두 장승 다 관모를 쓰고 왕방울 눈에 광대가 두드러지며 유난히 긴 귀를 가진 모습인데 천하대장군이 한쪽이 살짝 작은 짝귀이다. 두꺼운 일자 입에다 벌린 입속에는 4개의 이빨이 보이고 입속에 손가락이 쑥 들어간다. 지하여장군은 비녀 꽂은 머리에 왕방울 눈꼬리는 위로 치켜 올랐다. 미소 짓는 입과는 엇박자라 표정이 그리 친근한 모습이 아니고 어색하다. 기계로 지나치게 말쑥이 다듬어진 몸체 때문인지 아직 깊은 교감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벅수장군 제()는 벅수가 서있는 앞집의 고준용씨 부부가 몸을 정결히 하고 정월 초사흘 날 할배할매 당산제가 끝나는 새벽 4시경 제물을 진설하여 제를 올려왔다. 그러나 지난 2009년 고씨가 작고한 뒤 부인 정춘자(80)씨가 대신 제사를 모셔왔지만 지병으로 수년전부터 제를 올리지 못하여 현재는 단절된 상태이다.

    주민들은 동내 큰 행사나 혼사가 있을 때 개별적으로 밥상을 진설하여 제를 올리고 소망하는 바를 빈다고 한다.

    <배종진/강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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