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
  • 문화예술

문화예술

문화예술

웹진 286 호 | 기사입력 [2019-07-24] | 작성자 : 강서구보

호국정신 깃든 해강일점 노적봉(露積峰)

  • 20190725174341.jpg
    호국정신 깃든 해강일점 노적봉
    (露積峯)

    강서 8경 중 제1

    옛 선인들은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이라 했다. 산지가 많고 강과 바다, 푸른 하늘,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비단을 수놓은 듯 빼어난 절경(景勝)을 자랑하는 곳이 많았다는 것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다.

    전국에 수없이 경승지(景勝地)가 많지만 대표적으로 8곳을 지정하여 대한 8경이라 했다. 그 중 하나인 부산해운대(海雲臺)는 신라 말 전국을 주유(周遊)하면서 여러 곳의 절경에 명명(命名)을 많이 남긴 한학자 최치원의 자인 해운(海雲)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는 전국각 지방의 읍··단위까지 8, 10, 12경이니 하면서 경치가 아름답거나 문화요소가 있는 곳을 손꼽아 홍보하고 관광 자원화 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강서에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일찌감치 향토를 사랑하는 선인들에 의해 노적봉(海江一點)을 비롯, 오봉산(竹島暮煙), 연대봉(咆哮無際), 보개산(明月滿山), 진우도(明沙落雁) 등을 묶어 강서 8경으로 표현하고 강서를 찾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어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준다.

    강서 8경중 어느 곳이 제1경인가? 하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이겠으나 그중에서도 으뜸은 호국정신의 전설을 품은 노적봉이 제1경이다.

    이순신 장군 기지 깃든 곳

    노적봉은 녹산동 성산마을 앞 바닷가에 위치한 마치 점을 찍은 듯이 조그마한 바위산이다. 마주보는 형산진(성산) 포구와 나루터는 당대 강서최고의 시장이 번창했던 곳으로 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국도 2호선은 진해방면에서 부산의 남쪽으로 접근하는 관문이자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서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목()이 되는 이곳에 일제가 배수갑문 공사(1934)를 하자 녹산 시메키리(締切·일본어로 물막이란 의미)’로 불리면서 유명해졌다. 지금은 제2수문까지 건설되어 강서평야의 홍수예방과 농업용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녹두알 같이 작다고 녹도(菉島)라 불리던 바위산인 노적봉 주변의 옛 이름은 독사리목(禿沙伊項 노적봉 물목)이다. 여기서 독은 대머리 독으로 바위산의 생김새가 말 그대로 대머리 같은 바위산이었음을 의미한다.

    노적봉(露積峯)이라고 불리는 곳은 전국에 여러 곳이 있으나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있는 곳은 녹산의 노적봉과 전남 해남의 옥매산 정상의 노적봉,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이다. 임진왜란 당시 노적(露積·창고 없이 곡식을 야적함)봉은 군량미를 산더미 같이 쌓아둔 것처럼 보이도록 볏짚과 갈대 등으로 위장했다. 이렇게 적을 기만하고 전투의지를 꺾어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해내려 오는 곳으로 지형과 위치가 전술적으로 절묘하다. 모두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관계가 있는 호국의 현장이다.

    전쟁에서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위장과 기만전술로 싸우지도 않고 적을 물리쳤다 라든지, 영산강 강물에 백토와 회를 풀어 뿌연 물이 쌀뜨물처럼 흘러내리게 하여 적이 달아나게 했다. 등과 같은 지혜설화(智慧說話)’가 스며있는 곳이 노적봉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계사년 228)새벽에 떠나 가덕에 이르니 웅천의 왜적은 움추려 들어 나와서 항전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우리배가 바로 김해 강(서낙동강)하류 독사리목(노적봉)으로 가고 있는데 우부장이 변고를 알려왔다. 모든 배들이 돛을 달고 즉시 달려가 조그마한 섬을 둘러쌓았다.’ 라는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 주변의 왜적들을 단숨에 물리치고 기만하여 남서해로의 진출을 막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독사리목이던 녹산 노적봉은 임진왜란 4대 해전인 부산대첩(159291) 이후로 노적봉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해남 옥매산과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은 명량해전(15979) 전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노적봉과 가까운 제2수문 옆에는 이순신공원을 조성(1992)하고 장군의 결사보국의지(誓海魚龍動 孟山草木知: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가 알더라)가 새겨진 전적비를 세워 장군의 호국애민정신을 기리고 있다.

    능소화 피는 능엄사(楞嚴寺)

    남쪽으로 노적봉 바위틈을 돌아서면 수능엄사, 또는 능엄사로 불리는 수줍은 듯 고즈넉한 모습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의 사찰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다. 시메키리의 지형환경이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능엄이란 불경의 능엄경(楞嚴經:선종의 주요경전, 인연과 만유를 설명하였음 )에서 따온 이름으로 귀에 익숙하지 않다. 능엄경은 금강경 ,원각경, 대승신기론 과 같이 불교경전 4교과 중 하나로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增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인데 무려 20자이다. 이경전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될 때 비경(秘經)으로 숨겨져 있다가 이후에 전파되었다고 전해져 신비함을 더하는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금속활자인 을해자 병용한글 활자는 조선세조7(1461) 불경인 능엄경을 한글로 옮긴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능엄사는 비구니 사찰이라 그런지 몰라도 주변 환경이 매우 정갈하고 단정해 보인다. 사찰입구 담장 길에는 6월말부터 피기 시작한 능소화가 만개하여 지천을 이루며 방문객을 맞아주고 있다.

    능소화와 능엄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서로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만났다. 바다 남쪽으로는 임진왜란 발발 최초 보고지 이자 또 하나의 강서 8경인 연대봉이 당시를 회상하는 듯 지척에서 노적봉을 지켜보고 있다.

    <강서향토사 연구소 /연구위원 배 종진>

     

     

     

     





공공누리 제4유형: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 및 변경 금지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 공보계 (051-970-4074)
최근업데이트
2018-11-20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구정관련 건의사항 또는 답변을 원하는 사항은 강서구에바란다 코너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